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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책 리뷰] 내 옆에 있는 사람/이병률 지음

by 신 선 2021. 11. 9.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니 책보다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으려나.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6년 전, 아직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한강 다리 (정확히는 마포대교) 위에서 케이윌의 '꽃이 핀다'를 들으며 '걸어도 걸어도 발 끝이 시리지가 않은' 봄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자신의 인생 책이라며 <끌림>을 추천해주었다. 참 좋은 (또 좋아하는) 책이라고, 한강대교에 그의 글이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그렇게 <끌림>은 그의 인생 책이면서 곧 나의 인생 책이 되었고, 이병률 작가는 이렇게 계속 글을 쓰시니, 당신의 책이라면 언제가 됐건, 무엇이 됐건 나 역시 읽어볼 수밖에.

 

책 내용

/ 눈빛은 그 사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 주는 설명서이자 안내서 같다.

/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하는 그 좋은 눈빛을 한없이 쳐다보고 바라보다가 그 눈빛이 나에게 좋은 신호를 보내오면 나도 그 눈빛에게 팔을 두르고 오래 같이 가자 할 것이다. 사랑해도 되냐고 말할 것이다.

/ 우리가 산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쉽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쉽지 않은 것이 우리를 달라지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이 추측은 작게나마 진실이다.

/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 진다는 것. 그것이다.

/ 몇몇 날을 길바닥에 누워서라도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이냐고 울고불고 대들 그 무엇이 가슴 한쪽에 맺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걸 지켜내는 데 까짓 두려울 일은 그 무엇일지 당장 알고만 싶어 졌던 것이다.

/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는지 이해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 음식 향기로 가득 찬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오면, 마지막으로 한껏 좋은 음식 냄새들을 맡은 다음 그 길로 식당을 빠져나오고 싶다. 먹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 내가 가는 길이 제 길이 아니었음 싶다. 길이 아닌 길은 두렵고 아득하겠지만서도 동시에 당신에게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도 할 테니까.

/ 조금은 벙벙해 있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 낫겠다. 그것이 가볍고 그것이 사무치게 자유롭겠다.

/ 그러니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 문득 방문을 하시는 허무와 허전에게, 가을날 문득문득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이 공허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 머릿속에선 용암이 튀는데 심장은 차마 그러라 명령할 수는 없었던 것.

/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 하지만 내가 지금 당신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은 그렇고 그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인생의 몇 번 올까 말까 한 감정임을 알아주세요.

/ 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실망들이 당신 앞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어요. 당신으로 잘 살 수 있고 당신으로 잘 일어날 수 있어요.

/ 나에게 그만큼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물이 닿은 글씨처럼 번져버릴까, 혹여 인연이 아닐까 나는 목이 마르고 안절부절입니다. 부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 그러니 내가 밑줄 친 사람이 되어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그어놓은 그 밑줄을 길게길게 이어갈 것입니다.

/ 시간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순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합니다.

/ 술이 퍼지면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는 것과 사람이 사람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이 선명해졌다.

/ 분명한 건, 사람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기울었을 뿐인데 이럴 땐 마음을 말려야 되는 것인지 다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못을 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접으면 접혀지고 자르면 잘리지지만, 마음은 접어도 접히지 않고 잘라도 잘라지지 않는 게 무섭다.

/ 이 우주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대상을, 어떤 순간을 껴안는다는 것이 실은 고작 마음이나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 그로 인해 사람이든 풍경이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사랑이 쓰다듬는 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인거야.

/ 걷지 않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야. 보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것들과 춤춰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과 밀당하지 않습니다.


/ 모든 사랑의 속성은 결국엔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모든 사랑의 끝에서는 자기 자신만 용서하게 된다고. 그런 방어기제조차 없으면 다리가 꺾이고 마음이 잘려나간다고.

/ 어떻게든 사랑이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모르게 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엉킨 선도 풀어나갈 힘이 없는 거라고.

파도를 멈추게 할 힘이 있는가.
그럴 수 없어서 사랑이지 않겠는가.


/ 길을 가다가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 감정을 다 소진시킬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조금 남겨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 그것이 당장 해치울 수 없는 산더미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한 사람에게라도 내 사랑을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 한쪽에 자신의 감정을 신고함으로써 이제 사랑의 어떠한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잡는 것이다.

/ 더 큰 파도를 기다린다. 더 큰 파도가 나를 덮쳐도 기꺼이 맞이하겠다.

느낀 점 + 실천해 볼 만한 것들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읽고, 그의 생각과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소중한 몇 가지들을 배낭에 넣어 메고, 무작정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면. 그렇게 만난 하늘도, 바다도, 노을도, 새도, 사람도 모두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건 다 이병률 작가 덕분일 것이다. 나는 그의 글이 참 좋고, 그의 사진이 참 좋고, 또 그의 생각이 참 좋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과 나 자신이 좋다. 살아있어서 좋다고, 이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할 때- 행복이 살며시 내 몸을 감싼다. 마음도 어루만져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는 말이다.

 일단 당장 여행이 가고 싶다. 어디가 됐건 좋을 것 같다. 어디든 좋지 않은 곳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 아름다움을 찾아내 두 눈에 담아내길 잘하는 사람. 그러니 도심이어도 시골이어도 외딴섬이어도 다 좋을 것만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작가가 그려놓은 전국 방방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내 발이 실제로 그곳까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정답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여행에 생각보다 큰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잖아. (호화스러운 여행이 아니라 단촐한 짐을 싸서 그저 산이라도 한 번 오르면 될 일이니까.) 아니, 의지만 있다면 시간과 돈은 막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잖아. 또 그것들을 투자해도 그것보다 더 큰 마음 (혹은 경험)을 얻게 되리란 것도 알고. 그러니 전혀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러니 당장 오늘이라도 어딘가로 떠나야겠는데, 참..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네. 아니, 그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지만 그곳으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나 아닌 타인을 만나고 경험하고 또 사랑하는 일이, 또 끝내는 헤어지는 일까지도 너무나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인생인가. 아직도 만나지 못한 인연이 한가득 일 테니 조금은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고. 또 이미 다가온 인연 역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연을 꼭 붙들어 메려고 애쓸 필요는 없고. 보내지면 보내지는 대로 또 보내주어야 할 테니. 그래서 말인데,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될 일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애써 굳이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도, 애써 굳이 피하려고 발버둥 치지도 않으려는데. (어차피 사랑이라면 반드시 사랑하게 될 테니까.) 그게 내 발걸음이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는 이유가 되려나. 가만 멈춰 서서 한숨 고르며 생각해봤는데 내가 작가라면 혹은 작가가 나였다면, 당신께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가는 마음을 달래 놓지도 못해 종국엔 혼자 한적한 카페로 떠나 글을 쓸 것 같다. 결국 당신이 있는 곳이 아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것 같다. 가서 마음을 한 잔 시켜놓고 마시면서는 '사랑이란..' 글을 쓸 것 같아. 그렇게 사는 인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니, 어쩌면 난 그렇게 살고 싶은 것도 같고. 그렇지만 난 사실은 그 글을 쓰고 난 뒤에는 너에게 가고 싶어. "커피보다 진한 마음을 마셔보니 그렇더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인연을 맺고 이어가는 방법이, 글을 쓰는 방법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언가를 바라보며 느끼는 방법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스스로를 더듬는 방법이 이럴 수도 있구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섬세한 표현력이 예술이다. 첫 페이지만 읽고도 느낌이 온다. 이 사람, 역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 사람의 온도를 잘 녹여내고, 본인도 잘 간직하고 있는 그런 사람. 세상에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부류의 사람. 그러나 흔하지 않음에 더 소중하고 특별한 거겠지. 무튼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려고 하고. 누군가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아야만 그 사랑을 알 수 있는 경험은 뭔가 간질간질하면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보다는 용기가 많은 것 같으니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그리고 성미도 워낙 급하다 보니, 머지않아 네가 있는 곳으로 갈 것 같다. 아니, 가야 하겠다. 왜냐면 사랑을 기다리지 않는 부류의 사람은 나니까.

 

평가

 이건 그냥 여행 산문집이 아니라, 사람을 타고 흐르는 여행 산문집이에요. 책 없으면 제가 선물해드릴 테니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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