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소주가 한 잔 당겼나...? 너랑 한 잔 하고 싶었나...? 오늘 밤에 심심할 것 같았나...? 그것도 아니면 작가가 나랑 소주 한 잔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했나...?
책 내용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진솔하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지극히 사적인 비밀이야기들을 덤덤하고 담담하게 소주 한 잔 털어 넘기듯 책 한 권에 털어놓았다. 작가의 많은 생각들이 본연의 문체로 솔직 담백하게 적혀 있었다. 기억에 남는 몇몇 글들을 옮겨적고 더 이야기해보겠다.
[위로 2]
네가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위로를 받아서
너를 위로하는 게
내가 나를 위로하는 거였어.
내가 아끼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때 나는 그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 '위로'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게 인간관계에 있는 내 꿈이다. 사실은 알고 있다.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는 건, 내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큰 위로라는 걸. 위로는 그 힘이 크고, 쉽게 전염되기 때문에 너의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결국은 나의 위로라는 말을 너무나 공감한다.
[반성해 본다]
엘레베이터 없는 6층 빌라 건물 601호 앞에 2리터짜리 생수가 4묶음이 배달되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아. 자취를 하는 나는 너무나 이해한다. 정수기도 없고, 생수를 사려니 자주 사야 해서 번거롭고, 들고 오자니 무겁고, 그러니 간단하게 택배로 한 번에 주문하면 편하다는 것을. 내 집 문 앞까지 배달되니까.
하지만 또 안다. 그것을 배달하기 위해 택배기사님은 무거운 생수묶음을 양손으로 들고 날라야 할 테니 그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를. 부자가 아닌 가난한 자취생은 반지하와 1층에서만 살았다. 나는 6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글 속의 그 사람은 6층이기 때문에 생수를 배달 시켰겠지만) 생수를 택배로 시키지 않는다. 두 팔로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내 손으로 들고 온다. 배려다. 그냥 나의 작은 배려. 택배기사님이 알거나 말거나 나는 그런 것을 내 소신껏 지키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또 한 사람, 작가도 그렇게 살고 있더라.
[꿈을 크게 갖지 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않아도 되니 새로운 일을 꾸준히 멈추지 않고 찾아나서라는 얘기였다. 세상 어디선가 나에게 맞는 일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나 아쉽게도 그 일은 발이 달려있지 않기에 내가 찾아나서지 않으면 평생을 만날 수 없다는. 그러므로 시도하지 않은 채 미련을 갖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라는.
사람은 인생을 살며 3~4가지의 직업을 갖는다고 하지. 작가는 이미 댄서, 타투이스트, 작가라는 직업을 거쳤다. 나는 무대의상 디자이너, 편집숍 의류 판매, 아이디어스 작가, 의료제조업 생산자라는 직업을 거치고 있다. 감히 짐작컨대 내 인생의 직업은 앞으로도 더 다양해 질 것이다. 나는 현재에 안주하며(?) 살기를 좋아하지만, 그 현재는 꾸준히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도전하는 것 역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또 다른 부분이므로.
[타임머신]
스쳐 지나가는 어떤 노래와 어떤 향기는
이따금 나를 과거로 돌려놓는다.
그때 그 노래와 향기는 타임머신이나 다름없다.
비록 미래로 갈 수는 없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억 속 그때로 보내주는
사소한 존재들.
기억이 과학보다 위대한 순간들.
'기억이 과학보다 위대한 순간들' ! 이것은 마치 모래 위로 이과를 넘어뜨린 문과의 안다리 기술 ? 너무 마음에 드는 글이라 내 마음속에 저장했다.
[감정]
수십 권 책을 읽어도
그 안의 모든 내용이
나를 치유해주지는 않아.
그 시절 나의 상황과 감정에
가장 와 닿았던 단 한 줄이
마음을 녹이는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져도
내가 초라하고 힘들 때
묵묵히 곁을 지켜줬던 사람의 뜨거웠던 눈빛과
내 귀에 가장 따뜻했던 그 목소리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거야.
하지만
상황과 감정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읽었던 책과 봤던 영화도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듯,
사람도 단 한 번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거 같아.
어쩌면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잘 못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거든.
맞다. 내가 서평을 작성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와 '느낀 점'을 작성할 때 흔히 겪는 증상이다. 읽기는 이러한 이유로 읽었으나 그 책의 모든 내용이 본래의 의도만큼 나를 어루만져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떠한 이유로 내 마음에 남는 글들이 있고, 또 그렇게 내 마음에 남은 글을 나중에 읽어보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상황과 감정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람에 적용시켰을 때도 마찬가지. 누구나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새로운 모습과 매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평가할때 만큼 '섣불리'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쓰일때가 또 있을까? 섣불리 타인에 대해 단정지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 역시도. 섣부르게 살지 말고, 함부로 살지말자. 천천히 오래지켜보면 볼수록 더 깊게 깨닫게 된다. '음미'하며 살자.
[좋은 사람]
마음을, 배려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상냥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더 좋다.
마지못해 받고서 바로 버리는 사람 말고
잠깐이라도 아는 척해주는 사람.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는 사람이 좋다.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사람.
나 역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가운 등을 보이는 사람 말고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 좋다.
이런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 역시 내가 이런 사람이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배려를 상냥하게 받아주고,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련다. 내 생각에도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조금 더 쉽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먼저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되어주며 그렇게 나는 기필코 나의 좋은 사람을 찾아낼 거다.
느낀 점 + 실천해 볼 만한 것들
필명이 실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이렇게 까지 솔직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일단 박수를 보낸다. 백 명이면 백명 호평을 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는 비난을 받아도 감수하겠다는 작가의 숨겨진 의지가 내게는 돋보였다. 나는 절대 실명을 밝힐 수 없다. 그래서 편지도 보호 편지로 발행 중이다. 내가 나인걸 밝혔을 때 나는 솔직해질 수 없을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를 써내고, 일어났던 일이라도 다듬고 부풀리기를 반복하고,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논픽션이 되겠지. 그러나 작가는 꾸밈없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써 내려갔다.
자신이 바닥이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바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님을 안다. 꼭 가난이나 그로 인한 열등감뿐이 아니더라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은 더욱 어려웠으리라. 박원의 앨범 [0M]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원 앨범이자, 수록곡도 모두 좋다. 꽤 유명한 타이틀곡 [all of my life]의 가사도 그렇고 앨범 소개도 그렇고 박원은 실화를 바탕으로 살면서 가장 강렬했고 가장 바닥을 쳤던 그 사람과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대중의 공감보다 본인의 고통을 선택한 노래라고, 반복되고 당연하면 무뎌지듯 이 앨범으로 그 사람이 무뎌지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물론 반복되고 당연해지면 무뎌진다는 것은 그 사람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지. 이동진 작가 역시 그러려나. 이 책이 발간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 이야기의 당사자인 그녀도 읽을 테고 그렇게 반복되고 당연해지면서 무뎌지기를 바랐으려나- 싶다. 사실은 나도 이 이야기가 네 이야기고, 이 편지가 네게 쓰였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언젠가는 내 고통을 꺼내 마주하며 아무렇지 않을 때가 오겠지. 그때 공개해보겠다.
평가
이건 비밀이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글을 읽고, 쓰고, 작가와 생각을 나누고. 소주 한 잔 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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