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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책 리뷰] 나를 사랑하는 연습/정영욱 지음

by 신 선 2021. 6. 16.

 

책 내용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책을 펼쳤다면, 아주 잘하셨습니다!

 

 흔한 응원과 위로의 에세이, 자존감을 찾아주는 글들, 자기 계발 도서 많기도 참 많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자존감,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있다. 책 제목이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라고 해서 꼭 '나'만 사랑하는 얘기는 아니란 말씀! 에필로그에서 저자도 그 점을 분명히 밝혔고, 나를 사랑하는 건 '나'를 아끼고 소중히 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온전히 지키는 삶, 그렇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는 삶이라 표현하며.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켜내는 것. 이 이야기를 담기 위해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누어 주변, 애정, 인생에서의 연습을 통해 자아, 연애, 가족, 그 외 모든 인간관계에서 마음껏 사랑하면서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가끔은 연인에게 보내는 글도, 엄마를 연민하는 글도, 친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글도 있다. 순전히 작가의 기준으로 써 내려간 '작가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인 셈이다. 계속 넘기며 읽다 보면 공감은 물론이고 (작가는 엄청난 필력의 에세이스트다) 나만의 기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만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 그리고 그 기준에 어떤 것을 담으면 좋을지 모두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남을 위한 착한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좋은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


 올해의 문장으로 선정된 글귀, 이 글귀 하나로도 이 책이 전하는 말을 대신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에 대해 잘 알고, 남들이 뭐라 하건 내 기준과 가치를 지키며 그렇게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많은 연습이 있어야겠지만 이런 좋은 글귀 하나만 가슴에 새기고 살아도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내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주고, 작가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을 느끼게 한 필력이 돋보이는 글이자 내 필사 노트의 첫 번째 장을 장식한 글이다. 이 책의 다른 문장들도 하나하나 다 좋지만, 이 글은 정말.. 통째로 좋다. 

 

<사랑은 막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언제는 사랑을 찾아 깜깜한 밤길을 헤맨 적이 있다. 긴 새벽이면, 외로움을 못 이겨 방안 가득 불빛을 켜놓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아침은 왔고, 나의 방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이 부실까 촘촘하게 걸어두었던 커튼도 햇빛 앞에선 소용없는 일이었다. 천막 사이로 빛은 새어 들어왔고, 뒤척이며 바람을 일으킬 때면 새어 나오는 빛은 요란하게 출렁이며 나를 깨웠다.

 

 그것은 그토록 원하던 사랑이었다.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또 그것이 그리워 긴 새벽 외로움에 떨곤 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때가 되면 알아서 오는 것이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을 넘어 아침이 도래하듯,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오는 것이었다. 또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를 어쩔 수 없이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향해 비추는 사랑을 피할 수 없었다.

 부스스한 몸을 일으켜 세워 나를 깨운 그 빛을 바라본다. 눈이 부셔 찡그려보기도 한다. 그러곤 손으로 빛나는 것을 가려본다. 어쩐지 나의 작은 손으로 가리는 것은 도저히 불가했다.

 

 안달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 하지만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오는 것. 찾을 수 없는 것. 대신할 수 없는 것. 내가 조정할 수 없는 것. 또 나를 깨우는 것. 나를 일으키는 것. 가릴 수 없는 것. 막으려 안간힘을 써 봐도 자꾸 새어 나오는 것.

 나에게도 사랑이 온다. 나는 너무 밝은 그것이 불편해 손으로 가려본다. 손 틈새로 흘러들어 오는 너는 막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느낀 점 + 시도해 볼 만한 것들

 책을 두 번 읽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볍게 훑고 지나갔는데 서평을 쓰려니 인상에 남는 한 페이지(위 글) 말고는 내용이 영 흐릿해서... 근데 두 번 읽길 잘한 것 같다. 나는 두 번째에서야 이 책의 진가를 알았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던 작가의 사고의 깊이와 성숙함 그걸 담아내는 글솜씨까지 많은 부분에서 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반했다(!)

 

 여기서 나만의 책 읽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저자 이름이나 소개를 보지 않고 글만 읽고도 저자의 성별을 알 수 있을까? 책 안에서 저자가 본인의 성별을 지칭하는 구절이 나오기 전에 말이다. 내 경우엔 거의 90%는 맞춘 듯하다. 보통 제목을 보고 책을 골랐으면 골랐지, 작가를 보고 책을 고르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일단 작가 소개를 보지 않고 그냥 책을 읽는다. 그리고 한 두장 넘기면서 이 글은 여자가 쓴 것 같다 혹은 남자가 쓴 것 같다 예상해본다. 정영욱 작가도 맞췄다. 이 책은 엄청난 감수성의 남자가 쓴 글인 것 같았다. 

 

 꼭 작가가 남자라서 반했다는 표현을 쓴 건 아니지만, 글이 좋은데 남자분이 쓴 것이라 반한 것도 맞긴하다. (사실 아직도 작가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진 않았다. 그냥 대충 서른 언저리쯤의 남성분이라 혼자 상상 중이다.) 아무튼 대체로 에세이나 산문집을 읽을 때마다 특히 '사랑'을 표현하는 글에서는 여자보다 남성 작가의 글을 훨씬 많이 접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남성 작가들이 훨씬 마음을 후두려 패는(?) 문장을 많이 쓴다. 어쩜 섬세하기도 하지. 마치 '그 남자'의 입장을 듣는 것 같기도 해서 좋기도 하고, 보다 담백한 표현 사이사이 오묘한 감정들을 숨겨놓은 것도 좋다.  

 

 요즘은 '오글거린다'는 말로 감성적인 글을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 정말 정말로 안타깝다.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가슴에 여운을 남게 하는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이 책은 너무나 그런 걸 느끼게 한다. 그래도 읽다 보면 솔직히 손발 오그라드는 순간도 있을 법 한데 (때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 글도 있고) 여긴 너무나 정갈하다. 정갈한 문체에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들이 좋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옮겨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특히나 정보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런 글이라면 더더욱. 이 책은 담담한 말투에 성숙한 어른의 향기가 짙게 베어난다. 나도 이런 글 쓰고 싶다.

 

 책 중간중간 <피하면 득이 되는 사람>,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 <아파하지 않기 위한 다짐> 등 1부터 숫자를 매겨 정리해놓은 글들이 있다.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만들고 정리해 놓은 것이다. 전에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에서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던 '나만의 기준 세우기' 그것을 정영욱 작가가 여기서 보여준다. 정영욱 작가의 글은 거의 대부분 내 생각과도 일치하기에 그대로 따라 해 봐도 좋고, 베낄 것만 베껴도 좋고, 새로운 기준을 다시 세워봐도 좋겠지. 아래는 참고용.

 

<아파하지 않기 위한 다짐>

1.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단 잘라내는 것에 신경 쓸 것.

2. 쉽게 기대지 말고, 쉽게 기댈 수 있도록 내어주지도 말 것. 쉽게 안기지 말고, 쉽게 품어주지도 말 것.

3. 가벼운 마음엔 가볍게 대처해줄 것. 가벼운 마음에 나만 아파하고 속앓이 하지 말 것.

4. 받은 상처나 끝난 관계에 대하여 나의 탓을 하지 말 것.

5. 거기까지였을 것을 노력해서, 여기까지 끌고 오지 말 것.

6. 나를 바꾸려는 상대에게 맞춰, 나를 바꿔주지 말 것.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기억할 것.

7. 부질없는 것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의미를 두고 괜히 실망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

8. 관계에 종착점은 내가 예상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할 것. 그러니까, 너무 힘주어 붙잡지 말고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지도 말 것.

9. 나를 잃어가며 상대를 얻으려 하지 말 것. 내가 없어진 관계에 대하여 우리라는 포장지를 씌우지 말 것. 

 

평가

 왜 이 책이 2020 올해의 문장에 선정되었는지 몸소 느껴보시길. 진짜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고 뭐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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