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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책 리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지음

by 신 선 2021. 6. 24.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작년 겨울, 혜승네 집에 초대되어 하룻밤을 자고 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인데 오랜만에 남친이 아닌 절친과 함께 맛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며 '나중에 나이 들어 이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책은 친구네 집에서 빌려보는 게 고르기 쉽다는 내 지론에 따라 책장을 구경하다 발견하게 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줄여서 여둘살이라 부를래)

 제목부터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라니! 어젯밤 내가 상상했던걸 현실로 이룬 사람들의 얘기가 궁금했고, 표지 일러스트도 매력적이었고,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장르고. 홀린 듯이 책을 집어 들고, 이 외에도 5권을 더 챙겼다. <여둘살>은 빌려온 책 중에서도 가장 먼저 펼쳐서 읽기 시작해 재미난 내용에 후루룩 다 읽고, 리뷰도 가장 먼저 쓴다.

 

책 내용

 책은 두 명의 비혼 여성이 함께 동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도 아니고, 동성커플도 아닌 두 여성은 마침 '혼자는 아니지만 결혼도 아닌' 생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다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 반영구적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한강뷰가 보이는 망원동 아파트에 고양이 넷과 함께 자리를 잡은 그녀들. 동거 전과 후, 그 모든 이야기를 두 작가가 에세이 형식으로 번갈아가며 풀어낸 책이 바로 <여둘살>이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가볍고 가볍게 쓰인 책. 가벼운 내용을 간결한 문체로 써서 가뿐히 읽기 좋은 책이 에세이의 특징이라 여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읽기에 아주 좋았다.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는데, 마침 그녀들의 생활은 나의 생각과도 아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내가 그녀들을 만났다면 나도 망원동 아파트에 함께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상상의 나래도 펼치게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니 하나씩 살펴보자.

 

# 그녀, 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김하나와 황선우. 프리랜서와 직장인.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 리스트. 그리고 우리 집엔 나와 여동생이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 여기도 그렇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곁에 두는 미니멀리스트가 김하나라면, 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최대한의 선을 훅 넘어가버리는 맥시멀 리스트가 나였다. 그 단 한 개를 소중하게 손봐가며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사람이 김하나인 반면, 여러 개를 마구 돌려 쓰다가 하나가 고장 나면 '아, 저걸 고쳐야 할 텐데...'라고 생각만 한 채 또 새 걸 사는 사람이 나였다. 지구 환경은 김하나와 같은 인류를 사랑할 것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나 같은 소비자를 반길 것이다."

 

 나의 이상은 김하나고, 나의 현실은 황선우다. 이제는 나도 제법 김하나다워졌다.

 

# 고양이, 넷

 그녀들에게는 동거 전 각자가 키우던 고양이가 두 마리씩, 총 네 마리가 있다. 그리고 황선우가 말했다.

어떻게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우게 되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에는 사람이 계획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잖아요.
고양이 문제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발가락이 닮았다]

귀엽다옹♥

 우리 집엔 자매를 닮은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책에서 언급된 분자구조로 따지자면 우리 집은 W2C2의 식이 되겠군.) 어떻게 하나하나 주워 모으다(?) 보니 마지막으로 데려온 베리가 무려 네 번째 고양이.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데려오고, 또 고양이 별로 떠나보내게 됐는데.. 그것은 내 계획에 없었던 적도 있다. 인생만큼이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고양이와의 만남과 이별.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됐다.

 

# 결혼, 비혼?

 두 작가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매우 자긍심을 갖는 듯하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특히 며느리 짓을 안 해도 돼서 뿌듯해하는 대목은 책에 여러 번 언급된다. 그러나 결혼을 해 보지 않고서는 결혼생활이 행복한지 안 행복한 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사회통념상 결혼에 뒤따르는 여성의 희생이 많아 그렇다 한들 꼭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것인데.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는 시댁은 마치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중요한 건 동거뿐 아니라 결혼도 마찬가지지 않나. '의무는 없지만 호의는 베푸는 관계'로 동거인의 가족을 설명하는 건 어쩐지 좀 치사하단 느낌이 들었다.

 

 또 결혼하지 않은 여자 둘이 살기에 무시당(했다고 주장)하는 에피소드도 종종 등장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그게 꼭 결혼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만약 우리 집에 저 코딱지만 한 윗집 남자보다 더 건장하고 젊은 남자가 있었다면 과연 그가 우리에게, 13년간 지하실에 있었던 마룻장으로 보수를 해주겠다는 소릴 할 수 있었을까?'라는 예측은 틀릴 수도 있다. 남자가 있건 없건 그런 못난 사람은 변함없이 못됐기에. 꼭 모종의 사건을 결혼, 혹은 남자와 연관 지을 필요성은 없어 보였는데 나는 어쩐지 그게 일종의 피해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혼 안 해도 행복하게 잘 산다는 그녀들에게 자꾸만 참견하는 주위 사람들. 나도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주위로부터 왜 결혼 안 하냐, 어디 하자 있는 것은 아니냐, 눈이 너무 높다 등등의 참견을 듣게 될까? 혹시 모를 그때를 대비해 늘 대답할 말을 고민했다. 나의 대답은 "결혼할 사람이 있었는데요, 없어요."이다. (ㅋㅋㅋ) 나는 여지없는 비혼 주의는 아니지만 별일 없으면 계속 비혼을 유지할 것이다.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내 자존감이,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라는 황선우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 동거, 장단점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

[혼자력 만렙을 찍어본 사람]

 이 말은 사실이다. 혼자 떠났던 부산 여행을 떠올려보면 정말 그렇다. 갈 때는 혼자였지만 올 때는 셋이어서 추억이 된 부분까지! 함께 하는 것, 사는 것. 이것은 동거의 장점이다. 그리고 동거의 단점이기도 하다.

 

 동생과 함께 살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책 속의 그녀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허나 그녀들은 '함께 살고 있음'에 만족도 최상이라고 답한다. 나 역시 꽤나 만족하고 있다. 혼자인 삶에선 얻을 수 없는 함께인 삶이 주는 아늑함은 생각보다 꽤 크다.

 

# 내 집 마련, 결심

 역시 집은 산다는 건, 특히나 서울은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책엔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받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출은 20년 넘게 성실히 직장생활을 이어온 황선우의 신용으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빚지는 걸 무서워하던 맥시멀 리스트 황선우는 이후 쇼핑을 줄이고 대출금을 갚으며 돈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되고, 프리랜서 김하나 역시 대출금을 갚기 위해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은 뭐든지 하면서 더 많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 두 사람은 각각 새로운 (돈 모으는) 재미와 커리어를 얻게 되고, 일 년 동안 대출금의 절반을 갚았다.

 

 아, 너무나 바람직하다. 나도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있는 한 이렇듯 열심히 살아야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내놓은 뒤 결코 멈추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속세를 질주하고 계신 혜민스님처럼. 망원동 혜민스님이란 별명을 얻은 김하나처럼. 나도 청학동 혜민스님이란 별명을 가져볼 테다!(물론 혜민스님은 이제 풀 소유의 상징이 됐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군. 풀 소유의 삶이란.)

 

# 김하나

 김하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실천력도 너무나 맘에 들지만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그 내용보다 작명 센스가 눈에 자꾸 들어온다. 어쩜 사람 이름을, 모임을, 프로젝트를 저리 별명을 붙여 잘 부르지? ('얕은 지식'모임, '눈먼 주택 프로젝트' 등) 이것이 바로 브랜드 라이터의 재능인가. 그리고 재치 있는 문장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냉장고 얘기만으로도 이 글의 반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냥 채소 통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미끌미끌하고 거무죽죽한, 거대하고 신비로운 굴을 꺼내 버리는 것으로 냉장고 청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라고만 해두자. 그 굴은 언제 욜로의 성전에 들어가 지하 감옥에 감금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양배추였다..."같은.

 

 나는 그녀에게 반했다.

 

# 노후 계획

 책 내용 중에 김하나가 쓴 [우리의 노후 계획 : 하와이 딜리버리] 파트를 가장 좋아한다. 이름도 너무 예쁘고, 그 실행력에 또 반했다. 꾸준히 하루에 하나씩 올려 쌓인 리스트를 보며 얼마나 뿌듯할까? 게다가 '우리'라니. 함께 노후를 계획하는 친구(이자 가족)가 있다니!

 

# 이웃 주민

 물리적 거리가 생각보다 우정의 큰 근간이 되기도 한다. 좋은, 좋아하는 친구들을 가까이 두고 자주 볼 수 있음은 정말 인생의 큰 축복이다. 난 사실 존경할만한 동거인을 만나 함께 사는 그녀들의 동거보다 같은 아파트와 동네에 이웃 주민으로 친구들을 여럿 둔 그 점이 더 부러웠다. 함께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산책하듯 걸어서 집에 가는 친구들. 음? 그러고 보니 내게도 있잖아? 소중한 나의 동네 친구들. 이름하여 ☆메박져스☆ (급히 지은 게 아니다. 절대)

 

# 진짜 인생

'제대로 된 물건'을 마련할 그날 같은 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물건이 얼결에 들어서버리자 생활이 가지런해졌다.

[자취는 언제 독신이 되는가]

 

"많은 사람들이 싱글로 사는 기간을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처럼 생각한다.

결혼을 점점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은 그 기간이 아주 길어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기간을 '진짜 인생'의 서막처럼 여긴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을 유예하며 사는 셈이 된다."

 

 내 인생은 이미 시작됐다. 제대로 된 물건을 들여놓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자.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가 되기 전의 유예 상태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 여자 둘이 잘 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 그녀들은 아주 잘 살고 있답니다.

 

느낀 점 + 실천해 볼 만한 것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아 나도 이 언니들처럼 살고 싶어'가 아니라 '아 나도 이 언니들처럼 글 쓰고 싶어'였다. (세부적으론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새삼스럽게도, 내겐 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 이미 몇 번이나 서평을 작성하면서 내 욕망을 내비쳤듯이(ㅋㅋ) 10년 전쯤 놓아버린 듯했지만 아직도 붙잡고 가는 중인 나의 이 욕망은 책 1권을 내겠다는 버킷리스트가 되어 2021년에 돌아왔다. 뭐든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지만 그전에 어떠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김하나처럼 나도 적당한 이름 하나 만들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해봐야겠다. 목표는 책 1권 쓰기. 목적은 나의 글쓰기 욕망 해소. 이름은.. 글쎄. 신선도 유지=3일 1포스팅?

 

평가

 여자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살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망원동 한강뷰 아파트, 고양이 네 마리, 멋진 동성 동거인까지! 비혼 여성들의 로망서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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